WON, SUK-YEON

원석연은 황해도 신천(信川) 출신으로, 1930년대에 일본으로 건너가 가와바타 화학교(川端畵學校)에서 수학한 것이 그가 받은 미술교육의 전부였다. 해방 후, 그는 가족과 함께 고향에서 서울로 내려와 충무로에서 행인이나 상인들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 주며 생계를 이어 갔으며, 1945년 미공보원(USIS)에서 생애 첫 개인전을 가지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품한 그의 작품 두 점이 모두 입선했는데, 「국전」에서 연필화가 입선한 경우는 원석연이 유일무이할 것이다. 1956년 서울 미공보원 화랑에서 열린 여섯번째 개인전부터는 원석연 특유의 정밀묘사가 정립되기 시작했고, 1960년대 들어서서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한국적인 소재들은 이후 2000년대까지 꾸준히 등장하면서 원석연 작품세계의 독특한 일부분을 이루게 된다.
수천 마리의 개미들이 떼를 지어 움직이는 모습을 그린 ‘개미’ 연작으로 사람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의 일이다. 사람들의 찬탄을 불러일으킨 이 그림은 삶의 삼라만상, 서로에 대한 신뢰와 의존, 성실, 불굴의 투지, 그리고 전쟁의 비극적인 상황이나 연민, 절대 고독에 대한 페이소스를 표현하고 있다. 이후 원석연의 연필화는 무르익은 기량과 사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 엄격한 소재 분석 등이 어우러져 원숙하고도 정제된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다. 말년에 이르러서는 화면에 여백을 많이 남겨 놓거나 배경 전체를 빈 공간으로 설정하고 한가운데에 극사실적으로 묘사된 사물을 두어 흰 여백과 대조되게 함으로써 보는 사람을 압도했다. 특히, 거대한 무(無)의 공간과 대치하는 듯한 한 마리 개미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원석연 자신의 모습이었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관조를 통해 얻어진 맑은 침묵의 화면은 말년의 원석연이 도달한 회화적 성취였다.
그러나 원석연이 작업하던 시기는 전통시대의 미학이 지배적이던 한국 근현대 미술계의 상황, 즉 ‘모필(毛筆)의 시대’였기에, 붓이 아닌 연필로 그린 그의 그림에 대해 미술계는 소원(疏遠)할 수밖에 없었다. 연필화가 무대 뒤편의 작업으로 인식되는 화단의 태도를 못 견뎌 한 원석연은 특유의 뚝심과 수도자와도 같은 침묵으로 대응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원석연의 작품과 고독한 삶을 이제라도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는 한국 근대회화사에서 연필이 지녔던 역할과 가치에 대한 연구에서뿐만 아니라, 연필화가 지닌 고유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 주는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